안녕하세요 오늘의 포스팅 주제는 '대한독립 만세' 입니다.
3.1절이라고도 부르지요. 올해는 삼일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특별한 날에 먼저 문제적 남자를 찾아준 게스트가 있었습니다.
먼저 와서 '기미 독립 선언서'를 정독중이었던 오늘의 특별 손님은 역사 덕후이자 모델인 고소현입니다.
에스팀소속의 모델 고소현입니다. 예전에 문제적 여자로 게스트로 등장했습니다.
해가 바뀌고 강산이 바뀌어도 언제나 기억해야 할 외침.
삼일절. 대한 독립 만세.
100년이 지나도 또렷이 기억하고자 문제적 남자 제작진이 준비한 특별한 무대로 역사 선생님이신 설민석 선생님이 게스트로 나왔다.
흡입력이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역사를 읽어주는 남자 설민석이 삼일운동 100주년 특집에 함께 했다.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올해가 삼일운동 100주년이고 (3.1절) ,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설민석 선생님이 역사속에 감추어진 사연과 울림있는 감동을 문제적남자답게 역사문제와 함께 하려 나왔다.
우리는 일본에게 35년을 지배당했다.
반만년의 시간. 단군 이래 1,000번을 침략당해도 단 한번의 지배도 당해본적이 없는 우리 역사는 처음으로 일본의 지배를 당했다.
당시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지, 분했을지 상상도 안된다.
10년의 시간을 울분과 통탄의 인고로 버틴 후 일제 강점기를 절반으로 나누는 사건.
1919년 3월 1일. 이렇게 3.1운동이 시작되었다.
처음시작했을때는 일이 이렇게 커질줄은 몰랐다. 만주, 연해주, 일본을 넘어 미주까지 전세계적으로 대한독립을 외친것을...
자신감을 가졌지만, 다소 산발적인 분위기라 독립을 외쳤던 운동가들은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겠다 싶어서 조직적인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헌법전문을 읽다보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로 되어있는데 이것이 결국 무엇을 의미하냐면 대한민국이 올해 2019년에 100살이 되는 해이다.
이처럼 뜻깊은 해다보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한몸 불살랐던 열사, 의사분들을 존경하고 또 존중하는 마음에서 다시 돌아보는 자리를 갖고자 준비해보았다.
많은 국민들이 삼일 운동이라하면 전 국민들의 50%이상이 바로 떠오르는 위인이 있다.
바로 유관순 열사이다.
이처럼 잊지못할 빛나는 분들도 있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의사분들이 계시다.
한분 한분 다 소개해드리고 싶지만, 너무도 많기에 간략히 몇분만 소개하겠다.
대한독립을 위해 총을든 최초의 여성 의병장이신 윤희순 의사.
예전 2015년도에 개봉한 1,000만을 돌파한 영화 '암살'을 기억하는가.
영화 암살속의 전지현씨가 역할을 맡았던 독립군 최고 저격수 안옥균.
안옥균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이 바로 뒤에 소개할 남자현 여사이다.
뜬금 없지만 영화 암살의 전지현이 착용한 안경은 림락 제품이다.
영화 밀정에서도 공유가 착용한것도 보여드리겠다.
역시나 대한독립을 위해 의열단으로 행동했던 영화 밀정의 공유이다.
(전지현, 공유의 안경에 대해서 알고싶다면 http://kylblue.xyz/272 에서 보시면 된다. 나름 패션 블로그다 보니, 지나칠수가없다.)
밀정은 독립을 위해 일본에 저항하고 싸우는중 같은 소속에서 변절한 배신자를 찾고 그 이후의 일들을 담은 이야기이다.
실제로 많은 의열단과 의사들이 숨어있던... 변절해서 친일파가 된 밀정들에 의해서 감옥에 갖히고, 목숨을 잃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남자현 의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남자현 의사>
한번은 이런일도 있었다. 국제연맹(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국제평화 및 안전유지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국제 기구)에서 일본과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를 조사한다고 파견되어 있었다.
이때 우리의 독립의지를 알리기 위해 남자현 의사가 스스로 무명지를 자르고 혈서를 쓴다.
이 진정어린 혈서를 국제연맹에 보내는데 자른 손가락을 함께 동봉하여 보낸다
일본이 보았을때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그만큼 이 의지가... 독립 의지가 강하다는것을 보이기 위해 말이다.
또 안경신 여사가 있다.
이 안경신 의사에 대해 어떤 일화가 있냐면 때는 3.1운동 직후인 1920년에 미국의 상하의원들이 평안도에 왔는데, 1920년을 '독립전쟁의 해'로 선포했던 임시정부. 우리의 독립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폭탄거사를 하려 했다.
그러나 대한광복군 지도부에서는 안경신은 하지말라는 '불가'명령이 내려지고 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경신은 불굴의 의지로 폭탄거사에 합류하게 된다.
제 2 결사대 소속.
장덕진, 박태열, 문일민, 우덕선 그리고 안경신.
1920년 8월 3일 밤 9시 30분.
총 다섯명의 제 2결사대가 폭탄과 권총으로 무장했다.
먼저 문일민과 우덕선이 평남도청에 폭탄을 투척하는데 성공, 이어서 안경신이 평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적하는데 성공하였지만, 빗물에 젖은 폭탄은 불발로 그쳤다.
경계태세를 강화한 일본군이었지만, 이후 8월 15일과 24일, 9월 1일 선천역과 선천경찰서를 잇따라 폭파에 성공하는 등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데 성공했다.
이에 일본 경찰과 군인들은 폭파범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 평양 시내를 샅샅히 뒤졌지만, 혼란을 틈타 독립투사들은 압록강을 건너서 중국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안경신 의사는 피신을 가지 못했다.
이유는... 임산부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임신 7개월의 무거운 몸이었던 안경신은 대원들의 안전과 몸에 무리가 될 것을 염려해 조국에 머물렀다.
함께 운동했던 투사들이 귀환한 뒤에도 안경신 의사의 조국 독립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대원에게서 폭탄을 한개 건네 받은 그녀는 다시 거사를 도모하려고 함경도와 평안도일대에서 거주하던중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1921년 3월 20일에 체포되었다.
압송되는 과정에서 아이를 출산하였지만 아이가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인해 불과 12일만에 아이는 시력을 잃고 만다.
징역 10년의 선고를 받고, 출옥후 3년 뒤에는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형을 거의 다 마쳤을때 자신의 아이를 찾아 나섰는데.
아이는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돼어있었다.
이토록 참담하리만치 힘겨웠을 안경신의 생애는 그 시대 나라를 잃고 설움에 북받쳐 울며 살았던 우리들의 모습과 같았을듯하다.
우리나라 대한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사람들.
수도없이 많지만,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선생님들이 많다.
권기옥 열사의 경우 한국 최초의 여성비행사로서 일왕궁을 폭파하기 위해 중국 공군에 들어가서 항일 투쟁을 하였다.
또한, 일제 강점기시절 조국 독립이라는 같은 꿈을 꾼 한 부부.
김학규, 오광심 독립운동가도 있었다.
1900년 11월 24일, 평남 평원군에서 태어난 김학규 선생은 일제의 무력으로 국권이 참탈당하는 광경을 직접 경험하면서, 구국항쟁에 뛰어들 결심을 하고 이갑 선생 등을 따라 만주로 건너갔습니다.
1919년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의용대로 파견되어 소대장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일제가 한인들을 수없이 학살하고 민간 가옥에 방화를 저지르는 등 경신토벌을 저지르면서 활동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때, 김학규 선생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각처로 피신하던 중 봉천 신민현에서 문회고급학교에 입교하여 6년간 신문학을 배우고 교편생활을 하였다. 학교 생활을 마친 뒤에는 동명중학교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교편에 서서 후배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항일의식을 심어주는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오광심은 1910년, 나라가 망한후에 태어났다.
망한 이 나라에서 교사생활을 하던중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오광심은 교편을 내려놓고 조선혁명당에 가입하여 사령부 군수처에 투입되게된다.
이 시기에 역시 교편을 접고 무장투쟁에 뛰어든 김학규는 친일인사들을 숙청하고 일제를 파괴하고 응징하기 위해 설립된 독립운동단체인 '조선혁명당'의 참모장으로 임명되었고, 당취오군과 한중 연합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의하는 대일작전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 협정으로 인해 영릉가전투 및 통화현전투 등에서도 큰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여기서 김학규 선생은 훗날 부인이 될 오광심 선생을 만나게 된다.
결국 둘은 백년 가약을 맺었다.
1930년대에 우리나라 도처에 독립군들이 많이 있었는데(국내와 만주를 오가며 활동했던 의열단과 같은 독립운동단체) 너무 도처에 흩어져 있어서 하나로 뭉치자는 뜻에서 조선혁명군에서 운동하던 오광심 선생이 남편 김학규선생과 난징으로 오게된다.
이곳에서 하나된 독립군 결성의 뜻이 담긴 보고서를 전달할 임무가 부여되는데, 무려 200장이나 된 빼곡히 글써진 보고서를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통째로 외워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정말 이 가공할 암기력이 어디서 났는지...
아마도 이것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한 독립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수없이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지만, 그 부분에 대한 포스팅은 나중에 또 올리도록 하겠다.
이상으로 삼일절이 100주년이 되는 올해.
곧 나올 유관순 열사의 영화 '항거'도 개봉하는데 보러 가야겠다.
이상으로 포스팅을 마친다.
'연예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UN 출신 김정훈, 임신한 전 여친에게 피소 (0) | 2019.02.26 |
---|---|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나온 오지율 역할의 배우 박규영입니다. (0) | 2019.02.26 |
모모랜드 데이지, 아이콘 송윤형 열애설 및 열애 부인 (0) | 2019.02.15 |
동상이몽2 80회에서 나온 소이현과 소이현 동생 정말 많이 닮았네요 (1) | 2019.01.29 |
동상이몽에 나온 정겨운, 전 부인과 현 부인, 이혼과 재혼 그리고 루머들. (0) | 2019.01.29 |